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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만개한 거리로 무작정 걸어 나왔다. 분홍빛 꽃잎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봄의 절정을 알리는 풍경, 따뜻해야 할 계절, 따뜻했어야만 할 이시간에 나는...패딩을 입고 있다. 그것도 롱패잉. 거기까진 그렇다 치자. 봄바람이 아무리 달콤하게 불어도 아직 아침저녁으론 쌀쌀하니, 패딩이 그리 부자연스러운 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눈. 하얗고 부드러운, 눈. 눈이야 눈이 내려, 벚꽃이 피었는데.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하얀 눈송이가 섞여 내려오고 있었다. 벚꽃과 눈이 한꺼번에 내리는 장면은, 솔직히 말해서 무슨 몽환적인 판타지 게임 오프닝 같은 연출이었다. 이게 지금 진짜야? 싶은 그 순간, 머릿속이 약간 어지럽고 어리둥절해졌다. 손은 주머니 안에서 꽁꽁 얼어붙은 핫팩을 더듬고 있었고, 얼굴에는 차가운 눈송이가 닿았다. 어깨 위엔 패딩의 묵직한 존재감이 있고, 내 눈앞에는 봄꽃과 겨울의 눈이 동시에 내리고 있다, 분명히 말하자면 나는 술을 마신게 아니다. 그런데 왜 이 모든게 꿈처럼 느껴지는 걸까? 길가에 사람들이 있다. 어떤 커플은 셀카를 찍으며 웃고, 어떤 아이는 손을 내밀어 눈송이를 받아본다. 그들의 표정은 평온하다. 나만 혼란스러운 건가? 다들 이 기묘한 계절의 충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걸까? 지금 여기는 봄인가, 겨울인가. 기온은 겨울인데, 눈 덮인 거리 위로 벚꽃이 피어 있다. 나는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니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봄꽃 위에 눈이 쌓인다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눈이 내리는 봄거리 한복판에서, 어깨엔 겨울을 입고, 눈앞엔 봄을 두고, 내 안의 시간 감각은 어딘가로 휘청였고, 계절에 대한 믿음은 무너졌다. 정말로 이상했다. 벚꽃은 피어야 할 때 피었고 눈은 내려야 할 때 내렸다. 그런데 그 둘이 동시에 찾아오자, 나는 방향 감각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다. 따뜻해야 할 봄은 차갑고, 아름다워야 할 풍경은 어딘가 썸뜩하게 낯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풍경은 머무도 아름다웠다. 나를 당황하게 만들 만큼, 현실감이 떨어질 만큼, 아름다웠다. 봄과 겨울이 손을 맞잡고, 나를 잠깐 데려간 어떤 틈새의 세계, 머릿속은 복잡한데 눈은 끝없이 맑다. 이 모든게 말도 안되는 조합인데도, 이상하리만치 조화롭다. 이건 분명히 현실인데, 어쩐지 현실 같지 않았다. 꿈에서 깬 것 같기고 하고, 꿈을 걷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웃었다. 패딩 안에 파묻힌 채, 눈과 꽃이 함께 흩날리는 그 거리에서, 조금 이상하고, 아주 아름답고, 완전히 황당한 그 봄의 눈속에서
진심은 올 여름의 더위, 겨울의 추위 점 어려워지는 현실이 두렵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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