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이십대 중반 대학생입니다. 제가 사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제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저는 참 사주 공부를 하면서 사람의 운이 그렇게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인지 진실로 깨달은 것 같습니다.운세가 따라주지 않을 때는 죽어라 노력을 해도 안되는 것이고, 운세가 따라줄 때는 그에 비할 노력이 아니어도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비록, 제 가족들 임상이긴 하지만 깨달은 것 같아요저는 16년도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제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는데, 그날은 유달리 아버지가 이상하더라고요사실 그날 뿐만아니라,그전부터 이상해졌다고 할까요. 제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2학기를 휴학하고 반수를 해서 집에서 공부를 하던 때였습니다.사실 아버지는 통근을 멀리하시고, 왜 대부분의 아빠가 그렇잖아요 애들 사랑하는데 몸이 안따라주고 힘드니까 , 그리고 가족이니까 그냥 표현안하는거. 근데 저희 아빠는 무뚝뚝한 스타일은 아니었고 20살이 넘은 딸을 우리애기라고 부르면서 안아주는 그런 아빠였어요. 그런데 딱히 아빠랑 진지한 이야기같은건 안했었던거 같습니다.그런데 반수를 하러 집에 와서 엄마가 해주시는 밥먹으면서 공부를 하고있던 참이었습니다. 2학년 2학기를 휴학해서 사실 의대를 목표로 했지만, 공부량이나 시간이 모자라서 쉬고싶은 마음도 있었고, 뭐 열심히 안했습니다. 근데 휴학하고 대전에 와서는 아빠랑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거 같아요. 아빠가 공부하는데 힘든건 없느냐, 부터 시작해서 우리가족의 경제 상황이라던지, 아니면 자기 어렸을적 이야기, 직장사람이야기, 뭐 진짜 솔직히 왜 아빠가 반복해서 하는말이라 흘려듣긴 했는데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나, 통장잔액, 보험증서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빠한테 이런걸 왜 나한테 말해? 라고 하니까 그냥 혹시 몰라서래요.그때는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아빠는 돌다리를 20번은 두드리고 가는 스타일의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아빠가 아침에 통근버스로 출근을 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라 혹시 몰라서 교통사고 보험을 좀 많이 들어두었다고 저한테 말했거든요. 우리아빠는 엄마는 별로 안믿는 스타일이었는데 저는 진짜 엄청 믿었던거 같아요.그래서 그 보험증서를 신발장 속에 숨겨두었다고 까지 말해주고, 진짜 안궁금한데 막 공인인증서 비번을 계속 반복해서 알려주고 주식투자한거 그런거 어떤기준으로 투자했는지 그때당시 제 기준에서는 쓸모없고 왜알려주지 싶은 그런걸 알려줘서 걍 듣는둥 마는둥 응응~~ 이렇게 흘려들었어요.아빠는 의대보다 제가 한의대를 가길 원했는데, 아빠가 한의사가 되고싶었고, 또 한방에 관심이 엄청 많아서 그랬었던게 기억나네요. 그래서 제가 한의대 가면 아빠가 무조건 빚져서라도 개원비용 다 대주겠다고 아빠가 아는 유명한 한의사 선생님 소개시켜준다고 뭐 그런 얘기도 했던게 기억이나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얘기도 좀 하고, 사실 22살 애가 듣기에는 별로 와닿지도 않는 그런 얘기였는데 아빠는 뭐가신나서 얘기를 그렇게 했을까...어찌됐든간에 저는 수능을 결국 제대로 못봐서 학교로 돌아가게 됐는데 그거와는 별개로 학기는 3월에 시작하니 계속 집에 있었습니다. 제 남자친구는 계속 의대를 못가서 반수를 했는데 3번째 실패한 상황이었고 그러니까 4반수를 한거죠.( 남자친구는 재수학원에서 20살때 만났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좋은 성적이 나와서 제가 잘 안되었더라도 기쁘더라고요. 그거때문에 고생엄청한거 알았으니까. 이때도 느꼈는데 남자친구는 내내 재운이 들어와서 시험운이 썩 좋지 않았었더라고요. 저보다 실력이 월등히 좋은 친구여서 인서울 의대도 노릴정도였고, 또 강남에 있는 재수학원에서도 항상10등 안에 들던 친구였는데요.그리고 노력도 정말 피나게 했습니다. 편인운이 들어오니 그래도 한의대라도 되더군요.그리고 아빠가 건강관리를 엄청 피나게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배도 안나오게 관리하는 타입이고, 암튼 건강검진때 뭐 안좋다고 하면 거기에 좋다는 약 다 찾아먹는 타입이었는데, 왜 그러냐니까 아빠는 할아버지가 많이 아파서 학교 다닐때 할아버지 걱정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저한테는 그런 걱정 주고싶지 않다고 그런 말씀을 하신게 기억나요
그러던 아빠가 1월어느날 갑자기 새벽부터 딸국질을 하시더라고요. 근데 사실 그냥 아빠가 감기기운 정도만 있어서 푹쉬면 나을 줄 알았어요. 막 아프면 본인이 먼저 그냥 누워서 나을때까지 꼼짝안하는 타입이거든요. 근데 그날은 새벽내내 딸꾹질을 해서 왜그러나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갑자기 뜬금없이 우리집 차 바퀴 4개를 다 교체하고 왔더라고요. 마모된거같다고. 그리고는 이모집에 가족들끼리 가는데 뜬금없이 그러는거에요. “그녀석 담배 피냐? 하고 해서 제가 “누구?라고 하니까 “걔 있잖아 너 남자친구 라고 하길래 좀 놀랬어요. 아빠는 아빠들이 대다수 그러듯이 아빠라는 자체만으로 본능적으로 딸의 남자친구를 싫어하는데 우리아빠는 그정도를 넘어서 그냥 남자친구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저한테 그 남자친구 언급을 일절 안하셨거든요.그런데 그날은 그렇게 뜬금없이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라고 대답하고 말았는데 아빠가 “그럼됐다. 라고 말하는데 그때 뭐랄까 그단어나 말투가 아빠가 쓰는 말투랑 단어가 아닌데아빠가 아닌느낌? 그런 느낌이 확왔습니다. 뭔가 불안하더라고요. 제가 사주상으로도 살짝 그런거 같긴한데엄청예민 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예민한 편같아요. 촉같은게 좀 있는거 같아요. 근데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그 주 내내 5일 동안 계속 악몽인데 새벽에 깨는 그런데 끔찍한 꿈. 근데 그게 뭔지 모르는 그런 꿈. 그리고 기억이 안나는 그런 불안감을 주는 꿈을 꿔서 잠자리 방향때문인가 하여 잠자리 방향도 바꿔보고 엄마한테 호소도 했습니다. 악몽꿔서 힘들다고. 저는 엄마랑 항상 같이 자서 엄마가 악몽을 꾼거같다 싶으면 깨워주셔요. 그래서 그주내내 이유없는 불안감이 있는데 그게 그 일일지 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그날 이모집에는 외할머니가 계셨는데, 외할머니가 청국장을 끓여주셔서 가족들이랑 맛나게 먹고 아빠는 직장동료분이랑 저녁약속을 간다고 먼저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빠갈게~ 라고 하는 말에 폰보느라 귀찮아서 응~ 이랬는데 굳이굳이 다시 아빠봐야지 울애기 하고 제얼굴을 보고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잘가라고 바이바이 했는데, 그게 아빠의 살아있는 마지막 모습일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고 엄마랑 할머니랑 우리집 근처에 있는 할머니 아파트로가서 저녁 7시쯤까지 놀았던거 같아요. 그런데 아빠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할머니 집전화로요. 그래서 스피커폰으로 다들 아빠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아빠가 언제올거니? 라고 해서 곧갈게 하고 아빠가 “아빠먼저자고있는다라고 해서 응 이라고했습니다. 그리고 30분뒤에 3분거리의 우리 아파트로 차타고가는데 어찌나 눈이많이 내리는지 엄마가 운전하기 무섭다고 막 난리쳐서 제여동생이랑 저랑 막신나게 엄마놀리면서 갔습니다. 그때 오디오에서 last christmas라는 노래를 들으면서요. 집에 들어갈때 불이 꺼져있길래 아빠~~~~이러면서 들어갔는데 대답을 안하길래 기절한척 장난치는구나 하면서엄마랑 동생이랑 셋이서 아빠~~~이러면서 저는 아빠쪽으로 가고 엄마는 안방불을 켰습니다.그순간 아빠가 입이 새파랗게 질려 누워있는걸 봤어요. 저는 정말 순간적으로 아빠가 숨이 끊긴걸 탁 느꼈습니다.제가 의학적인 지식이 전혀 만무한데도 그 상황에서 바로 아빠 맥박이 없는 걸 확인하고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동생과 엄마는 울고 기절하기 일보직전이고 저도 눈물에 콧물 범벅에...진짜 미친사람같이 심폐소생술하고 엄마랑 동생은 거실에 있는 집전화로 119에 전화를 걸었는데, 하... 유선전화라서 전화를 끌고오는게 안되는 상황인데 119 대원이 출동한다고 지금 소생술바로 시작하시라고,심폐소생술 하실분 전화바꾸라고 하는데, 저는 안방에있고 아빠도 안방에 있는데 어떻게 해요그상황에서 다시 핸드폰번호를 알려주고 제핸드폰으로 받고 정말...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에요...
그래서 막무가내로 침대에서하던 심폐소생술을 전화받는 대원이 알려준대로 아빠를 침대 밑으로 끌어내리고 진짜 오열하면서 했는데 맥은 돌아오기는커녕 아빠몸은 점점 차가워지고,, 팔이아파서 힘이 안들어가는 내가 증오스럽고,,,그와중에 엄마랑 동생은 실신할거같고 이상황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5분이 지나고서야 119가 왔습니다.그분들도 애초에 아빠상태보고 심정지 된지 좀됐고 되돌리긴 어렵다는 걸 알았는지 바로 아빠 힘드실수도 있다라고 하더라고요 거의20분을 소생술하다보내고 119를 타고 가장가까운 종합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그곳에서도 거의1시간가량을 심폐소생술을 했는데, 제가봐도 가망이없으니 다리힘이 풀리고 그 사람 많은 응급실에서 정말 데굴데굴 구르면서 우는거 밖에 못하겠더라고요. 30분전까지 통화하던 사람이 그렇게 허망하게 가요? 말도 안되잖아요. 그리고 아빠가 심근경색이나 이런건 아닌거같은게 그게 그렇게 통증이 극심해서 보통 사지가 뒤틀리고 손이 전화기쪽으로 뻗힌 상태에서 발견이 많이 된다고 하는데, 이건 아빠가 진짜 평온히 자다간 그런 상황이라 저는 아빠입술색과 체온을 확인하기전에는 그냥 자는줄 알았습니다.그래서 집에서 사망했으니 경찰분들오시고, 혹시모르니 먼저들어가서 현장확인하시고 진술서까지쓰게하더라고요제가 그렇게 정신이 없고 정말 죽고싶고 무슨상황인가 혼란스럽고, 아직 죽음이라는 거 자체를 못받아들이는 상황인데 현실은 저에게 빠르게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더라고요.당장 아빠 장례식장을 예약했어야 했고, 친척들에게도 연락을 했어야했고, 그말을 전하면서 오열하고기절하고 고모, 우리할머니, (친할머니친할아버지는 돌아가신지 좀됐습니다) 진짜 초상났다는게 그런 분위기라는걸 태어나서 처음느꼈습니다. 그거외에도 아빠부검을 해야할지, 그리고 화장할지, 묘자리는 어디를할지, 납골당은 어디가 좋을지 진짜 그런결정을 반쯤 혼절한 엄마대신에 하려니까 제가 죽을거 같았어요.장례치뤄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장례때 사용할 사진을 고르라고하고, 거기에 무슨액자 , 얼마짜리 액자를 할거냐, 화환은 뭐가좋겠냐 이런걸 제가 결정하려니까 진짜 돌아버릴거같고 죽고싶었습니다.다들 그런걸 할 정신이 아니었어요. 다들 아빠를 끔찍히 생각했는데 기절하고 난리도 아니고, 직장동료분들도 와서 펑펑울고가고 동네사람들도 연락못했는데 다들 오열하시더라고요. 제가 상주인데 뭘 어떻게 제가 그자리에서 기절하고 오열하고 할 여유도 없이그냥 저한테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저는 아빠 돌아가신 그날 새벽에 경찰서다녀와서 진술서 쓰느라 혼이 쏙빠져서 잠도 못자고 반쯤 미친상태였는데, 도데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아빠장례가 끝나고 아빠유품을 정리하는데, 갑작스럽게 떠나는 바람에 경제적인 것들에대해도 전혀몰랐고, 그래서 더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통장잔고를 확인하려니 공인인증서가 뜨더라고요. 그래서 아빠가 가진 경제권 따로 절차를 안밟고도 아빠가 반복해서 알려준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랑 아이디, 비밀번호로 다 알수 있었어요. 그래서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던거 같아요.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실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빠가 자신도 모르게 자기가 죽을걸 알고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그렇게 자기 주변을 정리할수가 없어요......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그래서 사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그다음부터 공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가 말씀하시면 알아는 들을 정도로는 만든거 같습니다.제가 16년 병신년 17년 정유년에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제가 금이 기신인데 정확히 12년전에 신금운에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그때 제가 죽을 만큼아팠고, 같이 모시고 살던 친할아버지도 돌아가셨어요. 사주라는게 있어?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여기에는 없겠지만, 제 주변 사람한테 고민털듯이 이런얘기 꺼내면미친사람취급받아요. 그냥 우연이 겹친거 뿐이다. 너희 아빠도 그냥 그우연에 맞아떨어진거다.라고요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엄마는 일지가 묘인데 17년도 정유년 정말 지옥같은 해를 보낸거같아요. 가족끼리 부둥켜안고 울고... 자다가 울고... 밥먹다가울고...저는 그래도 남자친구가 감정적으로 많이 도와줘서 지금은 많이 괜찮아진 상태입니다. 시간도 시간이고요.아빠돌아가신날에 사실 정신도 없고 진짜 상황설명할 상태도 아니고 아빠 돌아가셨어. 라고 톡하나 보내고 저는 오열하고 실신하고 아빠찾고.... 그랬었는데오후에 남자친구가 갑자기 나타나서 제눈을 의심했어요. 내가 드디어 미친건가 여긴 어떻게 온건가.헛것을 보는 건가. 그랬는데 남자친구가 저희지역 장례식장을 다뒤지고 다녔대요. 그날 아침에 톡보고 바로 준비해서 지방가는 버스 타고 온거였어요. 저한테 백화점에서 산 고영양제 타먹는 분말을 사서 안겨주더라고요. 제가 불편하고 친척들한테 뭐라고 그상황에서 소개하는것도웃기고 그런걸 아는지... 장례 내내 제눈에 안띄게 옆에서 있어줬어요. 그게 너무 고맙더라고요.아직도 저희는 잘 사귀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가 서울인데 남자친구는 지방에있는 한의대를 가게되서 장거리 연애지만 거의6년이라는 시간동안 제옆에서 지켜주고 힘든시간 보내줘서 정말 감사해요. 살짝 무뚝뚝한 면이 있긴 한데, 또 그런것만은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아빠가 마지막에 그친구에대해 “그녀석 담배피냐? 라고 물은 거보면아마아빠도 잘부탁한다는 무언의 뜻이 아니었을까 합니다.제글이 되게 스트레스 받는 내용인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털어놓고싶어도 이런 말 털어놓기 쉽지않고, 털어놓을 곳도 변변치 않아서요.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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